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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 (hip-hop)에 관한 힙합퍼 이야기

Trab C 2020. 12. 13.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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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힙합
세기가 바뀌면서, 음악 산업은 디지털 다운로드의 등장으로 인해 기존의 음악산업과 제품들은 위기에 처한다. 힙합은 적어도 10년 동안 매출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등 다른 장르에 비해 심각하거나 더 심한 고통을 겪었다. 그러나 동시에 세계 10대들과 패션과 유행을 선동하는 젊은층등에게 문화에 대한 지배적인 영향력으로 입지를 굳혔으며. 백스트리트 보이즈나 *NSYNC와 같은 90년 후반부에 나오는 인기 있는 "보이 밴드"들 조차도 힙합 사운드와 스타일에 집중했고, 리듬과 블루스 등은 힙합이라는 음악적 장르의 새로운 접근법에 완전히 적응하여 메리 J. 블리즈, R. 켈리, 커크 프랭클린 같은 스타들이 전세계를 가로질렀다.

 


2000년대 초, 힙합 크리에이티브 센터는 미국 남부로 이전했으며. 점점 더 실험적인 아웃캐스트의 성공과 뉴 올리언즈에 본사를 둔 두 개의 레코드 회사인 Cash money 와 No limit records (Master P가 설립하고 정착시킨 회사)에서 아티스트들의 성공과 이어서 챈들러, 8볼 & MJG, Three 6 마피아 같은 래퍼들의 신화가 이어져 나왔다

또한 에미넴은 그가 주연을 맡아 자전적 이야기를 이어나간 영화 8mile(2002)이 개봉하였고 이영화는 엄청난 대중적 인기와 성공을 누리면서 에미넴은 전세계적 팝스타가 되었다(에미넴의 노레 영화 주제곡 "Lose Yourself"가 아카데미 최우수 노래상을 수상함). 이어 에미넴과 함께  Dr Dre 는 2003년 'Get Rich or Die Tryin' 이라는 음악으로 뉴욕 출신의 50 cent 를 지원하였다 당시 50 cent 는 갱 출신으로 그가 대뷰할당시 상대 갱단으로 부터 견제를 받았으며 갱단들에 영행력 아래에 있던 힙합레이블들은 실력이 있음에도 그를 돕기를 꺼려하던 상항이였다 또한 닥터드레는 1999년 이후에 앨범 발매를 미루며 10년 가까이의 시간을 들여 자신의 이름을 걸고 만든 새로운 헤드폰 브랜드를 출시하였고 이는 전세계적으로 대중들의 인기를 사로 잡았으며 이는 몇해전 Apple 사에서 인수한 Beats by Dre 라는 헤드폰 브랜드이다 (힙합이라는 문화와 전자제품 그리고 아티스트콤비네이션의 좋은 예라고 생각한다) 할리우드의 성공으로 이름을 전세계에 알린 에미넴 또한 2000 년대를 넘어 2010년대까지 가장 영향력있는 힙합 아티스트로 발돋음 하였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주류 힙합에 대한 불만들이 나오기도 하였다. 2006년 nas가 '힙합 이즈 데드(Hip Hop Is Dead)'라는 제목의 앨범을 발매할 정도로 주류 힙합에 대해 반감을 가지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요 스타들은 계속 등장하였는데 애틀랜타의 T.I., 뉴올리언스의 릴 웨인 등 남부에서 두드러지는 상황이며 당시 South HipHop 이라는 새로운 형태로 까지 나타났다. 또한 뉴스쿨 의 힙합 아티스트였던  스눕독은 브루스 스프링스틴과 함께 록 페스티벌을 이끌었다. 그리고 아마도 Jay Z 만큼 힙합의 문화적 승리를 대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의 경력에 따라, 그는 힙합 아티스트에서 레이블 사장, 의류 회사 대표, 클럽 주인등 21세기 초 에미넴을 이어 힙합이라는 문화적 아이콘을 가장 장 살려는 아티스트가 아니까라고 생각한다 또한 그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빌보드 잡지 솔로 가수 최고 음반 1위 기록을 갈아치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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