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트랍C입니다
오늘은 어제 마오리족에 이어서 바로 옆 나라 호주 원주민인 에보리진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합니다
에보리진이라는 말의 어원은 라틴어 ab와 그 뒤에 original에서 유래하였다고 전해지며 말 그대로 원래부터 살던 사람 즉 원주민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호주 원주민인 애보리진은 호주 본토와 태즈 매니아, 프레이저 섬, 힌친 브룩 섬, 티위 섬, 그 루트 아일란 트와 같은 여러 섬의 다양한 원주민을 가리키며 토레스 해협 섬사람들 은 제외된다고 합니다. 호주 원주민은 50,000 년 넘게 호주 전역에서 발전해온 수많은 고유 한 민족으로 구성되고 있기도 합니다. 또한 호주 원주민은 호주 대륙에서 5만년 이상 살아왔으며. 오늘날, 250개의 뚜렷한 언어와 그룹이 호주 전역에 퍼져있다고 전해집니다.
또한 호주 원주민들은 원래 동남아시아(현재의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브루나이, 동티모르, 인도네시아, 필리핀)를 통해 아시아에서 왔다고 추측하고 있으며 적어도 4만 5000~5만 년 동안 호주에 체류해을꺼로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북방영토에 있는 나우 왈라 빌라 1호와 마데 베베 유적지 연구에 기초하여, 일부 과학자들은 초기 인류가 6만 5000년에서 8만 년 전에 상당히 빨리 도착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1788년 유럽인들이 호주에 정착할 무렵, 원주민들은 대륙 전체를 점령하고 활용했으며 습식 온대우림과 열대우림에서 극건조 사막에 이르는 광범위한 생태적, 기후적 조건에 성공적으로 적응했다고 합니다.
1770년 제임스 쿡 선장에 의해 호주 동남부 지역이 대영제국의 영토로 선포되어 뉴 사우스 웨일즈란 명칭이 붙은 이후 1788년 시드니를 중심으로 식민지화가 시작되었고 영국인 이주정책으로 인한 가장 큰 피해는 이들로 인한 학살보다는 이주민들과 같이 들어온 수두, 천연두, 인플루엔자, 홍역과 같은 전염병 때문이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질병에 대한 저항력이 없던 애버리진은 인구밀도가 높던 동남부 해안지방을 중심으로 큰 타격을 받아 인구가 급감하게 되었으며 또한 이주민과 같이 들어온 성병에 전염되어 유아 사망률과 출생률이 급격히 떨어진다. 이처럼 전염병과 성병, 그리고 탄압으로 인해 1788년과 1900년 사이에 애보리진 인구의 90%가 감소하게 되었습니다. 비교적 풍족했던 남부 호주의 경우 유럽 정착민들이 채 도달하기도 전에 이러한 전염병으로 애보리진 인구가 완전히 절멸되었습니다.
태즈매니아 섬은 특히 타격이 컸는데 이주민 정착 초기 2,000~15,000명 수준이었던 애보리진의 인구가 1870년까지 거의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인종학살이 가장 극심했던 1803-34년 사이 많은 수의 애보리진이 학살당한 경우도 발생하지만 가장 큰 이유로는 역시 이주민과 같이 들어온 매독과 같은 질병에 저항력이 전무했기에 대다수 질병으로 사망하였습니다. 내륙지방의 경우 원주민의 정착민들에 대한 저항이 격렬하여 이민 초기 약 3,000명가량의 백인 이주자들이 살해당한 것으로 산정되나 백인 이민자에게 살해당한 원주민의 수 또한 1만 명이 넘는 것으로 예측되고 있습니다. 이런한 일련의 사건들로 인하여 에보리지널 특유의 고유한 문화와 언어들은 현재까지도 점점 사라지는 추세라고 합니다.
(에보리지널 전통음악)
1850년대 식민지화가 안정되자 애보리진의 삶도 이주민들에 적응하기 시작하며. 그전까지 수렵에 의한 생활을 하던 원주민들은 한 곳에 정착하면서 특히 광산개발 등에 노동력을 제공하고 그들로부터 음식을 제공받는 관계가 형성됐다고 전해지고있습니다.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약 1,200여 명의 애보리진이 군 복무를 하게 되고 더 많은 군인이 필요하게 되자 그전까지 애보리진의 군복무를 제한하던 정책이 완화되었고 1920년대에는 애보리진의 인구가 급감하여 멸종할지도 모른다는 동정 여론이 높아졌으나 1930년대 전염병에 살아남고 이러한 질병에 저항력을 기른 원주민의 출생률이 높아져 다시 인구는 증가하게 되었습니다.
2007년까지 재임한 존 하워드 정권에서는 호주의 원주민 개화 정책이 이전 정권의 일이었다는 이유로 애보리진에 대한 사과나 보상에 소극적 태도를 보였으나 2006년 11월 태즈메이니아 지역을 기점으로 애보리진의 후손들에 대한 금전적인 보상이 이루어져 태즈메이니아 애보리진 후예들만 약 40여 명이 향후 5백만 달러의 보상금을 지불받을 예정이다. 2007년 총선승리로 집권한 케빈 러드 행정부는 2008년 2월 13일, 범정부차원의 첫 번째 공식 사과문을 발표하고 이를 연방의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시키며 현재까지 적극적인 사죄 활동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현재 2020년대 들어서는 호주의 건국 기념일인 1월 26일 오스트레일리아 데이를 바꾸자는 운동이 이러나고 있으며 그 이유는 1788년 1월 26일 아서 필립에 의해서 호주가 영국의 식민지로 선포되었던 날입니다 바꿔 말해서 애보리진에게는 자기들이 살고 있던 영토를 빼앗긴 날이기도 합니다.
마지막은 에보리지널 War dance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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