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이야기

칭기즈칸과 몽골제국의 탄생(2)

Trab C 2021. 6. 2.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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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트랍 c입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몽골을 통일한 칭기즈칸의 뒷이야기를 마저 해보려 합니다 몽골 통일 후 칭기즈칸은 1207년 키르기스와 오이라트 또한 복속시키며 점차 세력을 확장해 나가였는데요 이후 서쪽으로 도망친 나이만 족의 왕자 쿠출룩 을 잡기 위하여 중앙아시아로 군대를 파견하게 됩니다. 또한 1209년에는 서하까지 복속시키는데요 하지만 1210년이 되자 주르첸의(금나라) 사절단이 자신들에게 새로운 황제가 등극했음을 알리며 복종을 요구하게 되는 돼요 이에 칭기즈칸은 남쪽으로 침을 뱉고 욕을 퍼부었다고 전해집니다.

 

당시 칭기즈칸은 몽골의 부족한 물자 흐름을 타파하고자 주리첸을 공격할 궁리를 하고 있던 중 아주 좋은 명분 거리를 만들어준 거나 다름없었는데요. 이에 칭기즈칸은 쿠릴타이를 통하여 몽골의 주르첸 침공을 설파하며 결국 이에 동의한 몽골군은 1211년 주르첸과 전쟁이 시작되게 됩니다.  하지만 전쟁 초기 당시 몽골군은 성벽을 무너트릴 공성 무기가 전무했는데요 이에 몽골군은 성 외곽을 중심으로 농경지를 모두 불태우며 사라지기를 반복하였고 이에 주르첸은 일상생활이 불가할 정도로 내몰리게 되는 돼요. 또한 포로로 잡힌 적군은 무참히 살해하며 악명을 떨치기 시작하였고 이에 겁에 질린 주르첸은 성에 갇혀 굶어 죽게 되고 말았다고 합니다.

 

이후 3년 후 1214년 마침내 칭기즈칸은 중도(베이징)를 포위하였고 주리첸의 황제는 결국 자신을 칭기즈칸의 봉신으로 인하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몽골군이 퇴각하자 주리첸은 약속을 어기며 수도를 남쪽 카이펑으로 옮기는데요 결국 1215년 중도로 돌아온 칭기즈칸은 그곳을 폐허로 만들어 버리고 전리품을 챙긴 후 다시 몽골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전쟁 이후 몽골은 중국으로부터 엄청난 물자를 가져올 수 있었으며 이러한 물자의 풍족은 앞으로 있을 전쟁을 더욱더 수월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13세기 초 현제의 키르기스탄과 카자흐스탄에 살고 있던 위구르 인들은  주르첸으로부터 쫓겨 서쪽 톈산산맥 근처에 정착한 키타이족의 지배를 받으며 살고 있었는데요 칭기즈칸은 만주 출신이던 그들을 분간하기 위하여 카라 키타이 라 불렀다고 합니다. 키타이에 지배를 받던 위구르인들은 대부분이 무슬림이었으며 카라 키타이 들은 위구르인들을 탄압하였고 이에 위구르 인들은 칭기즈칸에 도움을 청하였고 이에 칭기즈칸은 제베에게 군사 2만을 주며 위구르인들을 도우라 말하였고 이에 제베는 카라키타이와의 전쟁에 승리하게 됩니다. 이 전쟁은 몽골군이 고향으로부터 수천 키로나 떨어진 곳에서도 작전을 수행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고 이후 몽골은 중국과 무슬림들 사이의 실크로드를 장악함으로써 이후 실크로드를 통제하여 수많은 물자를 확보하게 됩니다. 

 

 

이후 칭기즈칸은 탕구트, 위구르, 카라키타이, 주리첸 등을 속국으로 만들었으며 이는 엄청난 물자를 몽골이 가질 수 있는 사실이기도 하였는데요 이제 몽골은 이러한 엄청난 물자를 교역에 사용하고자 하였습니다. 이에 1218년 투르크족 술탄 무함마드 2세가 지배하고 있던 호레즘에 사절단을 파견하게 되는 돼요 하지만 사절단은 호레즘 북쪽의 오트라르에서 호레즘 총독에 의하여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하는데요 이에 칭기즈칸은 정벌에 나서며 순식간에 호레즘의 모든 도시들을 점령하였다고 합니다. 이에 호레즘의 술탄은 카스피해로 도망을 갔으며 이후 그곳에 숨어  살다 죽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후 몽골족은 새로운 땅을 찾아 몰려들었으며 이후 4년간 몽골군은 중앙아시아를 모두 정복하기에 이르고 맙니다. 

 

 

1227년 칭기즈칸 몽골 원정 이후 몽고의 속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호레즘 공격 당시 지원군을 보내지 않았던 탕구트를 정벌하기 위하여 군대를 보내게 됩니다. 하지만 칭기즈칸은 탕구트 원정 승리를 불과 며칠 남겨두고 사망하였다고 전해지는데요 엄청난 제국을 만든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몽골비사는 그의 죽음에 대해서 자세한 정황설명은 하고 있지 않으며 단지 그가 여름이 끝날 때 죽었다고만 남겨져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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