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트랍 c입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고려의 여진 정벌에 관해서 말해보려 합니다. 고려와 거란의 전쟁 이후 고려는 여러모로 국가를 제정 비하며 점차 중앙집권 국가로 변모하기 시작하는데요. 그 무렵 즈음 북방의 여진족들이 점차 힘을 키워 나가기 시작합니다. 여진족은 동부 만주에 살던 퉁구스 계통의 민족을 말하며 크게 숙여진과 생여진으로 나누어 부르기도 합니다. 숙여진의 경우 만주 지역 서쪽에 자리 잡은 부족들을 가리키는 말로 어느 정도 문명이 자리 잡힌 상태였으며 생여진의 경우는 이때까지만 해도 철기문화가 제대로 발달하지 못하여 철기를 주변에서 수입해 써야 했다고 합니다. 또한 여진족의 경우 반농 반목을 하는 문화로 농경문화와 유목문화가 적절히 혼합된 민족이었으며 예로부터 중국 왕조들은 여진족이 나라를 새우는걸 극도로 꺼려했다고 합니다.
거란족들이 요나라를 건국한 후 요나라는 중국의 북쪽을 차지하였으며 송나라는 중국 남쪽으로 밀려났는데요. 이후 요나라와 송나라 그리고 고려는 힘의 균형에 의해서 어나 한나라도 쉽사리 공격하지 못하는 상태가 돼버리는데요. 이때 거란족들은 여진족들을 엄청나게 탄압했다고 합니다. 주기적으로 목초지를 태워 말을 기를 수 없게 하였으며 일정 수준의 인구수가 증가한다 하며 남자들부터 잡아다 노예로 팔아버렸고. 여진족 땅을 점령한 이후에는 대리통치를 하기 위해 어느 정도 기존의 여진족 지도층들은 포섭해야 함에도 지도층부터 탄압을 하기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이에 여진족 내부에서는 점차 단합하기 시작하며 힘을 기르기 시작합니다.
거란족에 의해서 탄압받던 여진족들은 점차 일어나기 시작하는데요 그 중심에는 지금의 하얼빈 지역인 완안부가 여진 단합의 중심세력으로 떠오르기 시작합니다. 그 중심세력이었던 완안부는 우리의 고려 역사와 긴밀한 관계가 있는데요. 그이야기의 시작은 여진 변화의 주역이 고려인이었으며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어느 날 고려에서 넘어온 한 사내가 깡패한테 폭행당하고 있던 한 여인을 구해주며 완안부라는 곳에 정착해서 살기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이후 그 사내는 그 마을의 추장 딸과 결혼을 하였으며 이후 그사내는 추장을 이어받아 그마을 통치하기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이후 그 남자를 중심으로 한 완안부라는 마을이 구심점이 커지며 점차 여진족들이 단합하였다고 전해집니다.
그 사람이 누구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는데요 금사에서는 김함보라는 인물로 나오고 있으며 김함보를 시조로 하여 금나라를 건국하였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금나라 역사 기록에 금나라는 고려인 김함보의 후손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아무튼 이렇게 완안부를 구심점으로 한 여진족은 점차 세력권을 확대하였고 결국 여진족의 세력은 고려의 국경지대까지 뻗치게 되는데요 문제는 이때부터 발생하기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이전 고려의 경우 여진족을 한수 아래로 보며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하물며 고려 근처에 머물던 여진족들의 경우 친 고려 파로 고려 정부에 매우 순종적으로 대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점차적으로 세력권을 넓히는 완안구 여진족들에 의해서 일부 여진족들이 고려로 망명을 하였고 이에 완안구 여진족은 망명한 여진족을 반환하라 요구하며 내정간섭을 하기 시작합니다. 이에 고려 정부에서는 여진족에 선전 포고를 하며 임간이라는 장군 지휘 하에 첫 번째 전투를 치루지만 결국 패하고 마는데요.
2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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