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트랍 c입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고구려와 수나라의 전재에 관하여 말해보려 하는데요 다른 한편으로는 려수 전쟁이라고도 말하기도 합니다.
일단 고구려는 한반도의 고대국가이며 기원전 37년경 주몽이 이끈 부여족의 한 갈래가 지금의 중국 동북부 만주지방으로 내려오면서 기틀을 마련하였는데요 고구려는 일찍이 기마민족의 영향을 만이 받아왔다고 전해지며 지금의 만주지방은 당시 엄청난 철 생산량으로 고구려 수나라 전쟁 당시 고구려는 모든 병사가 철갑을 둘렀다는 설도 있습니다. 또한 만주지방은 농경문화 또한 많이 발달하여 중국의 입장에서는 만주지역에 나라가 만들어지는걸 무척이나 싫어했다고도 합니다.
수나라의 경우 위진남북조 시대가 끝나며 581년 북주의 외척이던 수문제 양견에 의해 중국을 다시 통일한 왕조로 수문제 이후 수양제 까지 두 명의 황제만 나온 단명 왕조중 하나입니다. 수문제 양견이 동북아 질서를 확립하고 싶어서였는지 당시 중국의 통제력 밖이었던 고구려를 사신을 보내 위협하기도 하며 고구려에게 조공을 요구하기도 하며 입궐하라고 압력을 가하기도 하였으며 제후국으로써 충성을 요구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고구려는 더 이상 수나라의 팽창을 지켜볼 수만은 없었고 598년 고구려 영양 태왕은 1만의 기병을 거느리고 요서지방을 공격하여 요서지방에서 수나라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며 다른 한편으로는 앞으로 있을 수나라와 의 전쟁에서 보급기지를 파괴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수나라 또한 가만 지켜볼 수는 없었는데요 약 4개월간의 전쟁준비를 한 수나라는 598년 6월에 수륙양면 정책으로 30만 대군을 출병하였습니다 하지만 당시 30만 대군이 일사 분란하게 움직이기는 힘들었으며 30만 대군의 징발로 인한 민심의 불안, 행군을 하며 군량 보급의 문제와 그리고 기후 불순과 전염병 등으로 인하여 점차 병력손실은 커져만 갔고 결국 수문제의 아들 양량의 부대는 요하 부근에서 퇴각하고 말았다고 합니다 또한 산둥반도에서 출반 한 수군의 경우 요동반도 근처에서 태풍을 만나 엄청난 수의 선박이 침몰하여 결국 수군 또한 퇴각하고 말았는데요 결론 적으로 수나라의 군대는 변변한 공격 한번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병력의 80% 가까이 손실한 체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하고 퇴각하며 1차 고구려 수나라 전쟁을 마무리했습니다 또한 다른 한편으로는 수나라가 전쟁을 일으키자 돌궐을 수나라의 빈틈을 노려 수없이 침략해왔고 더 이상 버틸 수 없던 수문제는 어쩔 수 없이 퇴각하였다고도 전해집니다.
1차 고구려 수나라 전쟁 이후 수나라는 고구려에 화친을 요청했고 고구려는 전쟁이후 요서지방에서 더욱더 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수문제는 전쟁에 패한후 수나라로 돌아가 위중한 병에 걸렸다고 전해지기도 하며 결국 604년 죽고 만는데요 일각에서는 양광이 수문제의 후궁이었던 선화부인을 범하였고 그 사실을 알게된 수문제는 양용을 황태자로 삼으려했지만 미라 사실을 알게된 양광에 의해서 살해 당했다는 말도 있습니다. 결국 604년 64세의 나이로 수문제는 죽었으며 그 뒤를 이은 수양제가 새로운 수나라의 황제로 올라오며 고구려와 수나라는 다시한번 전운이 돌기 시작하는데요 2차전쟁과 3차전쟁은 다음편에 어어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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